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갑자기다.
그러니까 전혀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절절한 이별을 경험한 우리는 더는 누군가와 헤어지고 슬픔을 맛보고 싶지 않다며 경기를 일으키듯 연애하지 않겠다!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겠다! 선언하지만, 늘 그렇듯 사랑은 슬며시 와 내 안에 살포시 앉아버리고 만다.
젊은 둘 키누와 무기는 스물하나의 대학생이다. 그들은 4년을 함께 사랑하고 결국 헤어진다.
키누와 무기의 설레던 처음과 말라가던 감정의 끝을 보는 것이 마치 내 이야기를 펼쳐보는 듯 슬펐다. 사실 영화의 시작부터 이미 슬퍼졌다. 우리는 결국 이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과 대화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거다. 밤을 새워 대화해도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상대와의 대화는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해야 한다. 어떤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공통분모를 끌어들인다. 시작은 호감이지만 이 감정을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뭔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진짜 시그널이 필요하다. 우리는 집중하며 만가지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낸다. 살아가며 내가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들. 서로 좋아하는 영화가 같다면 거기서 느낀 점이 어떤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떠들어대며 결국 ‘이렇게까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존재하다니!’ 흡사 이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닐까? 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때 가장 주의할 점은 내가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을 그 사람의 입으로부터 먼저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조금의 운도 떼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얘기를 들어버린다면 마음속으로 입틀막하며 방정맞게 손뼉을 쳐댄다. 난 이런 적이 있어서 정확하게 키누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들이 사랑에 빠진 데는 이유가 있다. 저렇게 마치 내가 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관계가 없다. 그냥 그 사람에게 푹 빠져버린다. 왜냐하면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있는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나같은 인간을 만나게 됐기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통의 관심사가 너무 맞아떨어지고 계속해서 그런 것을 찾아내듯 운명이라 여기게 되는 그런 관계는 몇 달만 흘러도 그 지속성의 여부가 달라진다. 조금만 지나고 보면 서로의 다른 생각을 금방 알아차린다. 같은 생각도 있지만 결국 그 사람은 내가 아니기에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일이 곧잘 생긴다. 그러면 나라고 생각해서 사랑하게 되었던 그 감정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내가 했던 각기 다른 두 연애에서의 감정을 전부 모아 만들어 둔 것 같았다.
한 연애 상대는 키누와 무기의 시작과 같았고,
또 다른 연애 상대는 키누와 무기의 끝과 같았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를 보고 멈추지 못하고 정말 아이처럼 엉엉 울며 오열했던 장면은 바로 그들이 이별 후 각자 다른 연애를 하며 딱 마주치고 돌아온 날.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 장면이다.
무기는 생각한다. 둘이 함께 좋아했던 그 작가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대해 키누는 어떻게 생각할까.
키누의 생각을 궁금해하던 그 장면.
둘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서로의 삶과 다른 이들로 채워져 이어지고 있고,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는데 우리만 이미 끝나고 없는.
물어보고 싶지만 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아닌.
씁쓸하고 쓸쓸하고 아리고 시큰거리는.
가장 가까웠지만, 가장 멀어진.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으나,
언젠가 문득 그때의 서로가 그리워지는.
사랑이라는 게 연애라는 게 그런 걸까.
영화 중에 좋은 대사가 많았지만,
나는 키누가 좋아했던 블로거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그 블로거가 쓴 글을 읽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이 사랑을 하룻밤 파티로
끝낼 마음은 없다.’
‘생존율이 몇 %에 그치는 연애 속에서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보았지만 보아도 보아도 현실적인 감정의 선을 따라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고 끝을 향해 시작하는 모두가 용기있다.
나도 키누와 무기처럼 전의 아픔을 잊기라도 한 듯 어느새 찾아온 사랑을 모른 척 시작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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