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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요일이면 이른 아침부터 맛있는 걸 잔뜩 만들어두고 산에 가던 엄마가 집에 있었다.
“나중에 일어나면 엄마랑 절에 갔다가 코다리찜 먹으러 안갈래?”
막 잠에선 깬 나를 애교 섞인 목소리로 꼬신다.
엄마는 아빠에게 애교를 전혀 부리지 않았지만, 없는
애교도 자식들에겐 짜내어 부리곤 했다.
“엄마 오늘은 왜 산에 안 갔어?”
부엌엔 어떤 음식도 하지 않아 빈 채였다.
“오늘 너무 기운이 없어서 안갔어. 그래서 음식도 못했고.”
엄마가 가자고 하는 절은 집에서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 혼자 산에 가려다가 기운이 너무 없어 집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먼 절에 가자고 하다니 귀찮기도 했지만 걱정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얼마전 백신을 맞아서 였는지, 다이어트 때문이었는지 약하게 대상포진이 왔었다.
2주 정도를 약을 먹으며 병원을 다녔고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운없이 무리할까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엄마는 풀 속에서 기운을 얻는 사람이기도 했다. 차선책으로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자고 물었다.
마지못해 받아드린 엄마와 손잡고 두시간을 조잘거리며 걸었다.
단풍이 들고, 낙엽도 떨어지고.
천리향의 꽃향이 가는 길을 애워쌌다.
예전에 어느 노을지던 날 집 주변의 큰 주택에 심어놓은 천리향의 향기가 온 거리를 가득채웠던 기억이 있다. 마법같이 아름다운 향기여서 엄마에게 물었더니 천리향이라고 했다.
오늘도 엄마와 그 향기에 취해 걸었다.
행복했다.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희망에 부푼 얘기들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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